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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기적 같은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낙뢰를 맞은 사람이 거뜬하게 살아남아 주위를 놀라게 만듭니다. 필자는 2008년쯤인가 울산에서 근무할 때 낙뢰를 맞은 분을 술자리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그분은 30대 초반이었을 때 낙뢰를 맞고 쓰러져 기절했지만 얼마 후에 깨어났는데, 양손바닥 일부분이 시커멓게 탈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것 이외에는 별 다른 이상증세는 없었다고 합니다. 번개의 온도는 30,000도로 이는 태양 표면온도(6,000도)보다 5배나 더 뜨겁습니다. 그분은 그 일이 있은 후 '번개를 맞고도 살아남은 남자' 로 유명세를 탔고, 건강에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면서 쾌활하게 웃었습니다. 필자도 2017년 초겨울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던 중 주먹만 한 눈발이 날리는 하늘에서 번개를 맞고 혼쭐이 난 적이 있습니다. 번개를 맞는 순간 "꽝~"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고 기체도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저는 김정은이 쏜 미사일에 맞아 기체의 뚜껑이 날아가버려 뒤뚱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김정은을 욕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낙뢰를 맞고 살아난 울산 분이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 공중에서 낙뢰를 얻어맞고도 끄떡없이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셈입니다. 그런데 진짜로 기적 중에 기적 같은 일이 2024년 8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또 일어났습니다.
재일한국계 교토(京都) 국제고는 이날 도쿄 간토이이치(關東第一)고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별칭 고시엔) 결승전에서 0-0으로 정규이닝 9회를 마치고 이어진 연장 승부치기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뤄야 했습니다. 연장 승부치기란 양 팀이 무사 1-2루 상태로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누가 많은 점수를 내느냐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을 말합니다. 교토국제고는 10회 초 안타와 볼넷, 희생플라이로 2점을 낸 뒤 10회 말 투수 니시무라 잇키의 역투에 힘입어 1점 만을 내주면서 2-1로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고시엔 결승이 연장까지 이어진 것은 2006년 이후 18년 만이고, 2018년에 도입한 승부치기 제도가 결승에서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교토국제고는 고시엔 본선 1차전에서 7-3으로 승리한 뒤 2차전부터 8강전까지 세 경기 연속 상대팀을 4-0으로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1일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아오모리야마다고와 붙어 2점을 내줬지만 끝내 3-2로 승리,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교토국제고가 사상 처음으로 우승하자 고시엔 구장에는 이 학교의 한국어 교가가 또 울려 퍼졌습니다. 일본 고교야구의 '꿈의 무대'인 고시엔에서 당당히 우승한 재일한국계 고교의 한국어 교가가 방송을 타고 일본 구석구석으로 날아갔습니다. 일본에서 야구는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인기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막강한 실력을 갖춘 고교야구팀이 수두룩합니다. 또 106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시엔 출전티겟을 따내는 것만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을 정도라고 합니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 (교토국제고 한국어 교가)
교토 히가시미야구에 있는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 교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999년 교토국제고에 야구부가 창단되었지만 창단 초기에는 재미 삼아 야구를 하던 '장난꾸러기들의 모임' 같은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일본 전국의 내로라하는 고교야구부 3,700여 곳이 고시엔행을 노리고 있지만 티겟은 47장뿐입니다. 학생 수(전교생 160명)가 워낙 적은 데다 선수 확보도 여의치 않는 교토국제고 입장에서는 '고시엔행 도전'은 하늘의 별따기일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021년 처음으로 여름 고시엔 입성과 함께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냈고, 2024년 여름 고시엔에서 우승이라는 더 큰 기적을 캐내고야 만 것입니다. 이번 대회기간 한국과 일본 국적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들이 찾아와 열띤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3루 쪽 관중석을 차지한 교토국제고의 응원단은 거의 3천여 명에 육박할 정도로 꽉 찼습니다. 교토국제고가 승리할 때마다 대회 전통에 따라 고시엔 경기를 방송하는 NHK가 홈플레이트 앞에 모인 선수들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을 중계함으로써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여러 차례 일본 전역으로 전파를 탔습니다. 그런데 이번 결승전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일본 옛 수도인 교토와 현 수도인 도쿄지역의 고교가 사상 처음으로 맞붙었다는 점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교토국제고는 최근 K팝 등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 학생들의 지원이 급증, 현재 전교생 160명 가운데 90%가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이 학교에 입학하면 주당 3~4시간씩 한국어를 배워야 하고, 한국어로만 진행하는 수업도 있다고 합니다. 이 학교 백승환 교장은 "올해 4월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한 학생 10여 명이 전원 합격증을 땄다."라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고시엔(甲子圓)은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야구 구장 이름으로, 개장 연도가 육십갑자상 '갑자(甲子)년'인 1924년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매년 3월 '선발고교야구대회(마이니치신문 주최)'와 8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아사히신문 주최)'가 열리는데, 이를 각각 '봄 고시엔'과 '여름 고시엔'으로 통칭합니다. 32개 고교가 열전을 펼치는 봄 고시엔에 비해 47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별로 1개교(홋카이도와 도쿄도 2개)씩 49개 고교가 출전하는 여름 고시엔이 더 큰 행사로 꼽힙니다. 고시엔은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홈구장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 소식을 접하고 페이스북에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고시엔 결승전 구장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고시엔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며 "열악한 여건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쾌거는 재일동포들에게 자긍심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야구를 통해 한일 양국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교토시내는 당연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지역 신문은 호외까지 발행했다고 합니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기적을 확인했습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건투를 빕니다.
마우대100이 전하는 '세상의 창(窓)'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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