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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은 오랜 세월 세계무대를 지배해 온 명실공히 최강팀입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국제양궁대회에서 한국의 남녀국가대표팀은 수십 년간 가장 높은 시상대를 독차지 해왔습니다. 그래서 양궁 하면 한국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한국인 지도자들이 각국 양궁대표팀 코치진을 맡고 있습니다. 2024년 프랑스 파리 하계 올림픽에서도 한국 남녀대표팀은 예외 없이 '세계 최강'임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전훈영(30·인천시청)-임시현(21·한국체대)-남수현(19·순천시청)으로 짜인 여자 단체팀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당당히 우승, '올림픽 단체전 10연패(連覇)'라는 대위업(大偉業)을 달성했습니다. 또 김우진(32·청주시청)-김제덕(20·예천군청)-이우석(26·코오롱)으로 구성된 남자 단체팀도 8강전에서 일본을, 4강전에서 중국을,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차례로 꺾고 '올림픽 3연패(連覇)'라는 달콤한 결과를 손에 쥐었습니다. 올림픽 양궁 단체전에서 여자팀의 10연패, 남자팀의 3연패를 기록한 국가는 한국뿐입니다. 특히 한국 남자 양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체팀 3연패를 기록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임동현-오진혁-김법민이 우승했더라면 남자팀도 7연패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왜 한국 양궁 선수가 '지구촌 종합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 무대에서 유독 두각을 나타내며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을까요. 손재주가 좋아서? 정신력이 특별히 강해서? 타고난 손재주와 강한 정신력만으로는 결코 금메달을 딸 수 없습니다. 한국만의 '특별한 비법(秘法)'이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몽구(鄭夢九) 전 현대차그룹 회장은 1975년부터, 아들 정의선(鄭義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005년부터 현재까지 부자(父子)가 40여 년에 걸쳐 사단법인 대한양궁협회 회장을 맡아서 엄정한 협회 운영과 함께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습니다. 같은 기업이 국내 단일 스포츠 종목 후원으로는 최장기간을 맡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는 과정에 한국 양궁의 발전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양궁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회장은 파리 올림픽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을 찾아 시상자로 깜짝 등장, 당당히 우승한 선수들과 코치진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한국 양궁이 강한지를 그 이유를 들여다볼까요? 한국 양궁이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처절하고도 철저하게 '공정 경쟁'을 통해 대표 선수를 선발한다는 점입니다. 학연, 지연 등 사사로움이나 과거 국제대회 성적 등 수상 경력이 전혀 개입될 수 없고 오직 '실력'만이 대표선수가 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대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6~7개월에 걸쳐 수천 번의 시위를 당기며 대표 선발전을 거쳐야 합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선수 6명도 2023년 9월부터 남녀 각각 101명의 선수가 1~3차 선발전을 거쳐 뽑힌 국가대표 8명 가운데 다시 두 차례의 평가전을 거치는 '지옥의 레이스'를 펼친 끝에 파리행 태극마크를 달수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경력은 있지만 큰 대회 경험이 없는 전훈영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도 걱정했는데, 뽑힌 걸 어떡해요."라던 전훈영은 금메달을 딴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고 밝혔습니다. 전훈영의 발언 속에는 과거는 과거일 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느냐가 중요하다는 협회의 방침과 그런 지침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그래서 우승할 수 있었노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다음은 원칙에 기반한 협회의 훈련 지원 시스템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협회와 코칭스태프는 대회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며 선수 개인별 장단점과 문제점 등을 정밀 체크해 나갔습니다. 협회는 또 센강 주변에 있는 파리 올림픽 양궁장과 비슷한 남한강변에서 바람 적응 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진천 선수촌에 올림픽 양궁장을 그대로 재현한 '쌍둥이 연습장'까지 설치, 선수들의 '올림픽 시합 적응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사대(射臺), 표적판 플랫폼, 카메라 박스, 심박수 측정캠, 입장 동선까지 똑같았다고 합니다. 협회 차원에서 지원책의 압권은 심장 없는 '슈팅 로봇(Shooting Robot)'까지 투입한 것입니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현대자동차 기술진이 개발한 초정밀 슈팅 로봇은 센서로 바람 방향과 세기를 정확하게 측정, 상황별로 표적을 맞힐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화살 중 불량품을 골라내려고 만든 슈팅 로봇이 선수들의 기량, 특히 정신력을 강하게 단련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슈팅 로봇은 인간처럼 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그야말로 기계일 뿐입니다. 양궁 시합에서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상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 기복 없이 10점을 쏘아대는 '기계와 같은 선수'와 맞붙을 때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슈팅 로봇은 선수들에게 진정한 강자인 '기계 같은 선수'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일깨워주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임시현과 김우진은 슈팅 로봇과 시합을 펼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임시현과 김우진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 기복이 전혀 없이 딱딱 과녁 정 중앙을 맞히는 슈팅 로봇을 통해 '큰 영감(靈感)'을 느꼈을 것입니다. 올림픽 무대에서 감정 기복 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진정한 강자와 겨뤘을 때 어떤 마음 가짐으로 승부를 가려야 할지를 미리 경험해 보는 그런 영감 말입니다. 어쨌든 한국 양궁대표팀은 이런 처절한 준비를 통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또 쟁취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한국 양궁팀의 쾌거가 던진 '큰 메시지'와 '울림'은 다른 데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바로 안일함과 무사태평에 젖어 있거나 비리 등으로 얼룩진 다른 스포츠 종목들도 양궁의 공정성과 철저한 준비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4위까지 차지한 한국 여자배구가 왜 세계 최하위로 추락했는지, 대한양궁협회의 준비 과정과 양궁 대표선수들의 철저한 준비과정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마우대100이 전하는 '세상의 창(窓)'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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