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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미터(barometer)'란 단어가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기압계(氣壓計)를 말합니다. 'barometer'는 무게(weight)를 뜻하는 'baro'와 측정하다(measure)를 뜻하는 'meter'가 합성된 외래어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 <바로미터>는 '사물의 수준이나 상태를 아는 기준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잣대', '척도', '지표'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워낙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한국 사회인지라 이 바로미터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기도 하지만, 그 바로미터의 기준점도 수시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보도된 기사가 필자의 눈길 속으로 빨려 들어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제도' 시행을 시작한 결과 고가 법인차 등록이 급감했다는 겁니다. 번호판 색깔만 바꿨을 뿐인데 비싼 법인차 등록이 확 줄었다고요? 2024년 8월 29일 자 각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국내 법인차 전용 '연두색 번호판 제도' 도입 이후 8,000만 원 이상의 고가 법인차 등록 대수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동차 정보 업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바탕으로 한 2024년 1~7월 8,000만 원 이상 신차등록 대수는 전년 동기대비 27.7% 감소한 2만 7,400대였습니다. 이는 전년동기 대비 27.7%나 감소한 수치로, 감소 폭이 최근 5년 새에 가장 컸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법인차 등록대수는 24만 1,172대로 전년보다 4.2% 줄어 상대적으로 회사가 고가 법인차량을 구입하는 것을 확실히 꺼리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같이 고가의 법인 차량 등록 대수가 급감한 이유는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부착 제도'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2023년 개정된 '자동차 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공공·민간법인이 신규 등록하는 8,000만 원 이상 업무용 승용차는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부 사업자가 고급 스포츠카 등 고가의 차량을 법인 명의로 등록해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개인 용도로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통상 고급 차종으로 분류되는 중·대형 차종의 평균 가격을 8,000만 원으로 꼽고 있습니다. 연두색 번호판 도입이 고가 수입차의 법인 명의 등록을 막는데 결정타를 날린 것입니다.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고가인 포르쉐의 경우 전년 대비 47%나 감소한 2,219대 등록에 그쳤고, 수억 원 대에 달하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도 각각 44.4%, 65% 줄어들었습니다. 또 기업들의 임원 차량으로 널리 쓰이는 제네시스 G90 모델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도 전년동기대비 각각 45.6%, 6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가 외제차 선호 경향은 유별납니다. 회사 규모, 즉 매출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대표이사 등 임원용 차량은 외제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배기량이 3,000cc 이상이어야 하고 비싸면서 번쩍이는 외제차를 타고 다녀야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허세'를 부리는 풍조가 팽배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비싸게 구입한 차를 기업의 영업활동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회사 대표나 임원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업무용으로 국한되어야 함에도 회사 대표나 임원의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거죠. 따라서 업무용 차량은 주로 회사 주차장에 있어야 정상입니다. 개인용 차량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면 회사 업무상으로 필요할 때 법인 차량을 이용해야 함에도 출퇴근용이나 주말 골프장을 갈 때 등 사적인 용도로 법인 차량을 주로 쓴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골프장을 출입하는 대부분 고급 외제차는 법인 차량이다 보니 골프장 주차장마다 외제차로 넘쳐 납니다. 이처럼 법인차가 사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차량 구입비 이외에도 각종 세금과 보험료는 물론 주유비, 고속도로 톨게이트비 등 차량 운행과 관련한 부대 비용을 모두 회사(법인)가 부담함으로써 회사 운영비를 축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주는 아예 개인 차량이 없거나 있더라도 자신의 차보다 법인차를 더 많이 이용, 이중 삼중의 이득을 챙기는 셈이 됩니다. 물론 업무용 승용차는 법인 명의로 구입해야 업무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또 법인은 업무용 승용차 비용특례제도를 통해 업무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법인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경우 소정의 관련 비용이 인정됩니다.
법인 명의로 차량을 구매하려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법인등기부등본과 사업자등록증, 법인인감증명서 등의 서류가 필요하고 할부 등으로 구매하려면 심사를 위한 재무제표와 주주명부, 대표의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개인의 인감, 등본, 신분증 사본, 인감도장 등의 추가서류가 요구됩니다. 법인 차량 구매 시 5년 정액법 감가상각이 필수여서 1년에 800만 원씩 총 5년에 4천만 원까지만 인정되기 때문에 4천만 원이 넘는 차량을 구매할 때는 그만큼 법인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부모를 기업가로 둔 미성년자나 대학생 자녀가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스포츠카인 포르쉐나 벤틀리 등 법인차량을 과속으로 몰다 대형 사고를 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잦았습니다. 이런 행위는 서민들에게 '가진 자'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사게 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고가의 법인차량을 과도하게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탈세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 차량과 쉽게 구별될 수 있도록 '연두색 번호판'을 도입한 결과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도심지에서 연두색 번호판을 단 법인 차량을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또 주말이나 공휴일 골프장 주차장에서도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연두색 번호판'이 한국인의 양심을 체크하는 '바로미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우대100이 전하는 '세상의 창(窓)'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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