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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벌써 8년도 지난 서울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군요. 가로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2016년 초겨울밤, 서울 광화문역 주변 골목의 어느 허름한 식당. 필자는 숙소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새벽마다 만나 운동을 즐기던 멤버 대여섯 명과 인근 식당에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구르고 넘다가 자식들 이야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필자는 휴대폰에서 갓 돌이 지난 큰 손녀 사진을 보여주며 "부산에 있는 손녀가 너무 보고 싶다. 떨어져 있으니 더 그런 것 같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다들 자식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평소 활달한 모습이던 인쇄소 전무이사 A 씨는 입을 꾹 다문채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어요. 그러다 그는 가슴 깊은 곳에 쟁여놓았던 '기막힌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39살 아들과 동갑인 며느리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아이 낳을 생각을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제 손주를 안아볼 수 있느냐고 다그치는데도 아들과 며느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거죠. A 씨는 "그래서 나에겐 손주 복은 없나보다?"라며 포기한 상태이고, 그 생각만 하면 우울해진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A 씨의 아들 부부는 여행 마니아였습니다. 결혼 이후 틈만 나면 캐리어에 짐 싸들고 해외여행에 빠져 있는데, 앞으로도 아이 낳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면서 누가 손주 자랑하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나요. 특히 친구들이 손주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럽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을 즐겨야 한다며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고 때론 거부하기도 하지만 A 씨 아들 부부처럼 결혼을 해도 출산을 하지 않으려는 케이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로 떨어지고 말았죠.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한국 사회에선 결혼은 결코 의무가 될 수 없다."라고 강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걱정 없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완전 고용'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큰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용 불안을 부추기는 비정규직 증가는 결혼을 막는 확실한 요인으로 작동됩니다. 안정된 고용 속에 회사가 주는 각종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언제든지 일터에서 쫓겨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젊은이들의 고용 안정은 결혼에 꼭 필요한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가정을 꾸린 뒤 집을 살 수 있고 걱정 없이 자식 교육을 시키며 풍요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밝은 내일'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젊은이들은 시급(時給), 일급(日給) 알바 등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 직원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그들의 강변은 충분히 이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불안정한 내일' 걱정에 결혼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면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치솟는 집값, 감내하기 힘든 육아 비용도 젊은이들의 결혼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TFR, Total Fertility Rate)은 0.720명입니다.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로써 연령별 출산율(ASFR)의 총합입니다. 한국의 연도별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면 2014년 1.205명에서 2015년 1.239명으로 살짝 오르는가 싶더니 2016년 1.172명, 2017년 1.052명으로 급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18년엔 0.977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명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2019년 0.918명, 2020년 0.817명, 2021년 0.780명, 2023년 0.720명 등으로 끝없이 추락해갔죠. 한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 0.720명은 세계 합계출산율 2.25명에 크게 못 미치는 꼴찌 수준입니다.
합계출산율로 인구 증가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성 한 명(부부 2명)이 최소한 2.1명을 낳아야 인구가 유지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출생을 했더라도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합계출산율이 2.25명이니 지구상의 인구는 약간씩 증가하고 있지만 0.720명에 불과한 한국은 급속도로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 통계청의 인구 추이를 살펴 보죠. 1960년 한국 총인구수는 3,584만 명(중위연령 20.0세)이던 것이 1984년 4,040만 명(중위연령 23.8세)으로 4 천만명대를 , 2012년 5,019만 명(중위연령 39.1세)으로 5천만 명 대를 각각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엔 5,175만 명(중위연령 46.1세)을 기록했지만 12년 동안 단 한 번도 5,200만 명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합계출산율 추락의 영향이 인구 정체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향후 인구 추계를 보면 참으로 암울합니다. 2040년엔 5,005만 명(중위연령 54.6세)으로 겨우 5,000만 명대를 유지하다 2050년엔 4,710만 명(중위연령 58.1세), 2060년엔 4,230만 명(중위연령 61.5세), 2065년 3,968만 명(중위연령 62.7세)으로 4천만 명대까지 무너져 3천만명대로 다시 떨어질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2070년엔 3,622만 명(중위연령 63.4세)까지 꼬꾸라질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부분이 있는데, 바로 중위연령(median age)입니다. 중위연령이란 전체 인구를 연령의 크기 순으로 일렬로 세워 단순하게 2 등분한 연령을 말하는 것으로 인구노령의 지표를 확인하는 데 사용됩니다. 1960년엔 20.0세이던 중위연령이 2024년엔 46.1세가 되고 2050년엔 58.1세, 2060년엔 61.5세, 2070년엔 63.4세가 됩니다.
2070년엔 대한민국 인구 3,622만 명을 한 줄로 쭉 세워놓으면 '가운데 지점'의 나이가 63.4세라는 뜻입니다. 갓 태어나는 신생아나 젊은이는 없고 63세의 노인이 중간 나이가 될 정도로 '초초초초(超超超超) 고령사회'인 것이죠. 어떻습니까? 말로만 듣던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격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날 것입니다. '농촌 소멸', '지방도시 소멸'에 이어 심지어 국가마저 소멸된다는 지적 실감 나시죠? 이처럼 대한민국은 결혼 기피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격감 탈피가 가장 큰 국가적 과제로 대두된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도 꿈쩍도 하지 않던 출산율이 2024년 들어 반짝 반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1월 29일자 언론이 보도한 통계청 발표 '인구동향'에 따르면 2024년 1~9월 출생아 수는 17만 8,6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7만 7,315명) 보다 0.7% 늘었습니다. 이는 8월까지 출생아 수가 1년 전 수준보다 밑돌았으나 9월 출생아 수가 2만 590명으로 1년 전보다 10.1%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올 3분기 합계 출산율이 0.76명으로 1년 전의 0.71명보다 0.05명 늘어난 것으로, 이는 10년 만에 증가세를 돌아선 의미 있는 통계수치라는 것입니다. 가정에 아이가 없으면 생기가 없습니다. 사회에 아이가 없으면 활기가 없습니다.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지면 국가의 미래도 암울해지는 법입니다. 가장 급격한 속도로 초저출생국가로 전락해 버린 한국에서 단기적이긴 하지만 아이가 1년 전보다 많이 태어났다니 정말 '눈과 귀가 활짝 열리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많이 낳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번도 넘지못한 5,200만 명대를 돌파하고 6,000만 명대의 국가로 내달려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가진 똑똑한 민족이잖아요.
국민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라를 거덜 내려는 '참으로 형편없고 못 돼먹은' 정치인들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떼법과 폭력을 무기 삼아 일은 적게 하면서 줄기차게 고임금을 추구하는 바람에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었으며, 좋은 기업들을 해외로 내쫓고 외국 투자자들의 발을 못 붙이게 한, 그래서 결과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린 민노총도 태평양 깊은 바다 속에 밀어 넣어버려야 할 대상입니다. 지금 세계는 K-컬처 등 K-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한민족의 자질과 잠재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니 한국의 저출생 심화는 세계의 큰 손실이기도 합니다. A 씨처럼 아들의 출산 외면으로 손주를 볼 수 없다며 땅을 치며 울상 지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사회의 주축인 50~60대가 정신 바짝 차려서 자식들의 결혼을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국가도 젊은이들이 아이 많이 낳으면 더 멋진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바람직한 정책'을 끊임없이 발굴,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빨리 합계출산율을 1명, 2명, 2.5명으로 끌어올리고 40대, 50대, 60대로 치솟는 중위연령을 다시 30대, 20대로 확 끌어내려야 합니다. 필자는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모차를 탄 이웃의 유아를 만날 때마다 일부러 "안녕!"하고 인사를 꺼냅니다. 방긋 웃어주는 아이에게서 '참을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이들을 우리 곁에 데려온 젊은 부모들이 고맙고, 한국의 미래 꿈나무로 우뚝 설 아이들에게서 희망이 퐁퐁 솟는 것 같으니까요. 갓난아이들이 울어재끼는 '고고성(呱呱聲)'은 가정과 사회, 나라, 온 세상을 온전하게 버텨주게 만드는 '축복의 울음'이자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결혼하면 결국 이익이고 결혼 않으면 결국 손해라는 분위기, 아이 낳으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국 젊은이 본인을 포함해 모두가 손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8년이 지난 지금, A 씨의 아들 부부의 자녀 출산 여부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고고성이 쉼 없이 울려 퍼지고 산부인과 병원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마우대100이 전하는 '세상의 창(窓)'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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