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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말의 지혜, 즉 연륜이 깊으면 나름 장점을 지닌다는 노마지지(老馬之智)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노마지지는 춘추시대( 春秋時代· 기원전 770년~403년) 때 환공(桓公)을 도와 제(齊) 나라를 부국의 지위에 올린 명재상 관중(管仲)과 관련된 이야기로, 출처는 '한비자(韓非子)' 입니다. 환공이 관중과 대부 습붕(隰朋)을 거느리고 소국 고죽(孤竹)을 공격했으나, 간단히 제압할 줄 알았던 소국과의 싸움이 의외로 길어져 그해 겨울에야 겨우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혹한 속에 귀국을 서두른 나머지 제나라 병사들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관중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시, 문제를 해결합니다. 경험 많은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죠. 그가 "'노마지지(老馬之智)'에 기대면 그들이 우리를 안내해 줄 것이다."라며 늙은 말을 앞장세우자 과연 그 말은 봄에 왔던 길을 찾아냈고, 무사히 회군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노마지지의 법칙'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도 적용 됩니다. 긴 세월을 버텨내면서 경험과 연륜을 지닌 '인생의 현자(賢者)'인 노인에게서 '큰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각 분야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나이가 들어가는만큼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眼目)'을 가지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놓치기 쉬운 안목과 통찰력, 그것이 '노마지지'인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104세의 고령임에도 저작과 특강 등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원로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대혼란 속에 빠트린 비상계엄령 선포, 대통령 탄핵 소추 등과 관련한 확고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 정치계와 전 국민이 오롯이 받아들여도 좋을 '질타'이며 '충고(忠告)'이자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지금의 이 혼란 상황에 대해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으로 돌려 반성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김형석 교수의 '혜안(慧眼)'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면서도 비상계엄으로 치닫게 된 원인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향후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지에 대한 대책까지 제시했습니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존재하겠지만 '리더십 빈곤'의 문제인 것 같다."라고 진단하고, "정치 지도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다면 국민이 불행해 진다."라며 윤 대통령의 판단과 리더십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윤 대통령이 이런 '오판'을 하게 한 데는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을 '원인'으로 적시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재명 대표가 과거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극복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를 하는 대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랐지만, 이제 보니 그가 가는 길이 국민이 원하는 것도, 국가가 가야 할 방향도 아니고, 오로지 윤석열 정부를 무능하게 만들어 정권을 쟁취해야겠다는 목표 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특히 "더욱 나쁜 것은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과거를 덮기 위해 행정부와 사법부에 압력을 가한 점"이라며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의 정치 방향은 이재명 개인을 위한 것이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계엄령 선포의 원인 제공은 민주당이 했지만 의사가 환자를 고칠 때 먼저 약을 주고 그래도 안되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도 약도 주사도 없이 다짜고짜 메스를 들고 수술부터 한 셈이니 국민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라고 윤 대통령의 성급한 조치를 지적했습니다. 계엄령은 민주주의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그 노선을 따르려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지했던 것인데, 이제 보니 자유민주주의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건지 몰랐고, '이 정부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김 교수는 왜 이런 리더십 부재가 나타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 개인이나 민족이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 '공동체 의식'과 '역사관'이 있어야 한다."라면서 "공동체 의식이란 거짓 없이 정직해야 하고, 불의를 정의로 바꾸면 안 되며, 마지막 목표는 자유와 인간애(人間愛)에 있다."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강도 높게 비판, 눈길을 끌었습니다. 방향을 제대로 못 잡은 문 전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들과 정권을 함께 운용하면서 북한의 노선과 대한민국의 노선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했는가 하면, 김정은과 잘 의논하면 더불어 살고 통일까지 갈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과 동질(同質) 사회가 아니고, 정체(政體)가 완전히 다른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는 대북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결국 국민을 분열시켰다."라고 꼬집었습니다.
김 교수는 또 우리 사회가 과거를 절대시하고 미래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점을 개탄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것을 어떤 과거의 결과로 볼 게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고 방향을 찾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면서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이 리더십을 가지게 되면 과거를 끌어안고 살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세계의 모든 신생국과 후진국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면서, 그 순서는 '권력 국가→법치 국가→질서 국가'라고 진단했습니다. 즉 첫째 단계가 정치적 독재와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권력 국가’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만·박정희 정부가 이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단계는 법이 지배하는 '법치 국가'로, 우리의 문민정부 때 이 단계로 진입했다는 게 김 교수의 견해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상식이 지배하는 단계인 '질서 국가'가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법치 국가'에서 '질서 국가'로 가다가 좌절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특히 이런 좌절로 이어진 이유는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운동권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권력 국가'로 역행할 위기에 빠졌고, 이 분위기는 여야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민주주의를 모르면 국민을 힘으로 지배하려고 하는데, 이번 비상계엄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화를 통해 국민 여론을 끌고 가는 대신 계엄을 통해 힘으로 누르려 한 점을 지적한 김 교수는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국민의 선택이고, 이제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사태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그 원인은 야당이 만들었다는 것도 가볍게 보면 안 되며, 민주당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뀐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떤 '결과'엔 반드시 '원인'이 있는 법인데, 그 '원인'을 결코 예사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김 교수는 정의(正義)를 '권력을 가지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권력 국가'로 다시 후퇴하게 된다면서 "정의란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와 의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모든 공무원과 사회 지도자들이 애국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다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점을 꼽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과거 80년 동안 이만큼 나라를 건설한 민족이니 이 위기만 넘기면 다시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얻었다."라면서 "하지만 정치권이 지금까지와 달리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역사의 강물이 바다로 흐르듯 앞으로 나아가면, 인간애의 나무에 자유와 평등의 열매가 함께 열리는 '질서 국가'로 들어설 날이 올 것이다."라고 낙관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을 진단하는 104세 노학자의 시선은 예리하면서도 따뜻합니다. 그의 진단을 통해 왜 대한민국이 어떤 위기에 직면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난마(亂麻)처럼 얽히고설켜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출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취월장한 대한민국이 극심한 국론 분열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노마지지' 덕분에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김형석 교수와 같은 원로들의 노마지지가 쉴 새 없이 한국 사회에 던져져야 합니다. 또 이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뒤따라야 하고요. 그래야 '국론 분열'을 넘어 '국론 통합'이 가능해집니다. 국론 통합만 이뤄진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우대100이 전하는 '세상의 창(窓)'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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